Search

[1주기 연재] “뭐라도 하고 싶어서” 서울 온 제주 시민의 울분

날짜
2023/10/16
단체명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태그
텍스트
파일과 미디어
파일과 미디어 2 1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걷다 159명이 사망한 10월 29일이 돌아오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죽음이 헛되지 않을까 고민하고 행동하며 지난 1년을 살아낸 사람들이 준비한 추모 행사들을 기록으로 남긴다.[기자말]

14일 ‘유가족과 10.29km 서울도심걷기’ 행사 기록… 마지막 걷기 행사는 21일에

“가장 행복했던 10월이 가장 잔인한 10월이 됐습니다.”
10월에 태어난 아들을 10월에 떠나보낸 이태원참사 희생자 이진우씨의 아버지가 든 깃발을 선두로 지난 14일 ‘유가족과 10.29km 도심걷기’ 행렬이 이어졌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보니까 정말 우리는 그냥 하나의 계란이더라고요. 지금 권력에 있는 그 바위들과 부딪혀 보니까 사실 우리는 너무 힘이 없더라고요.”
진우 아버지는 힘 없는 계란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시민들의 연대의 힘이라고 말했다. 이날 함께한 100여 명의 유가족과 시민들은 여전히 응답하지 않는 정부에 계란을 던지고 있다.
가을비가 꽤 많이 내렸던 날, 1시간 30분 동안 청계천변 산책로 3km를 걸으며 참사 1주기를 알리는 전단을 붙이고 시민들에게 ‘진실의 보라리본’을 나눠줬다.
“어떤 경우라도 앞으로 나아갑니다”는 다짐
▲  ’유가족과 함께 10.29km 서울도심걷기’ 행사 두번째 날에 참여자들이 청계천을 걷고 있다. ⓒ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우리의 삶도 정치도 매일매일 새로 벌어진 일들을 해결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낼 때에도 유가족들은 뚜벅뚜벅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오늘은 날씨가 참 흐리고 비도 오고 마음도 착잡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1년동안 지내오면서 항상 좋은날만 있었던건 아니었습니다. 계속 힘들고 아픈 날들도 참 많았습니다. 외부의 어떤 환경이 우리를 지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우리가 항상 꿋꿋하게 우리 앞을 위해서 나간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같이 걷겠습니다.”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자 희생자 이주영씨의 아버지 이정민씨의 말처럼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거리에 나와 시리도록 추운 겨울과 지독히도 더운 여름을 보냈다.
다시는 우리와 같은 슬픔을 겪는 사람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정을 위해 노력했다. 1년이면 법이 만들어지고 진상규명이 다 이뤄지고 진정한 애도를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미완이다. 6월 30일에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고 8월 31일에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을 뿐이다. 더 시간이 지나 본회의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이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도 있다.
정부가 할 일을 묻는 시민들
▲  시민들이 10.29 이태원참사 1주기를 알리는 전단지를 붙이고 있다. ⓒ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딸이랑 그날 저녁에 이태원을 갈까 고민하다가 그냥 가지말자고 결정했어요. 이태원을 갈지 말지는 아주 작은 결정이잖아요. 근데 그 사소한 결정으로 생사가 결정됐어요. 작은 결정은 결과도 작게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인데…”
20대 딸을 키우는 시민은 본인이 참사 희생자가 될 수 있었던 상황이어서 더욱 마음이 쓰인다며 가족과 함께 걷기 행사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부산에서 온 또 다른 시민은 참사 하루 전날 현장에 있었다면서 “납득이 안되고 이해가 안되고 머리가 제로가 되었는데 여러분과 함께 걸으니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주기 추모대회가 있는 10월 29일에 참석이 쉽지 않아 조금 일찍 왔다”며 유가족들에게 힘내라는 인사도 함께 건넸다.
제주에서 온 한 시민은 “그동안은 너무 미안한 마음에 기도만 했는데 유가족들이 힘내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이든 하고 싶어서 이번 걷기 행사에 참여했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 나라가 도대체 나라가 맞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리고 먼저 떠난 이들이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도록  다음주 걷기 행사(21일)와 29일 추모제에도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세상은 바꿀 수 있을것 같아요”
▲  시민들이 소품 곳곳에 보라리본을 달고 진실규명을 위한 행동에 함께하고 있다. ⓒ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강릉에 사는 희생자 최혜리씨 어머니는 1주기를 앞둔 요즘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고백했다.
“같이 참여하고 싶어도 집이 멀다는 관계로 참여를 많이 못했는데 오늘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고맙고요. 함께해주신 연세 있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참사 발생) 처음에는 슬프고 힘들었어요. 눈물은 나는데 정신이 없었고 그냥 슬프다고만 생각을 했는데 요즘은 슬픔이 보다 더 깊어진 것 같아요. 진짜 시도 때도 없이 눈물나고 울컥하고. 이게 언젠가 사라질지 모르겠는데 조금 더 옅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노란색과 4월 16일은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을 상징하게 됐다. 그리고 2022년 이후에는 그 노란색 은행잎이 가득한 10월 29일도 세상에서 가장 슬픈날이 돼버렸다.
“상은이 가기 전에 한 달쯤 전에 상은이 엄마랑 셋이 이 길을 같이 걸었어요. 지금은 기억이 되고 추억이 돼버렸는데…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세상은 바꿀 수 있을것 같아요. 같이 행동하고 연대해주신 분들 너무 고맙습니다. 앞으로 10월 29일 며칠 안 남았는데 그때 많이들 오셔서 함께 추모하고 연대하는 시간 가지면 좋겠습니다. 오늘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희생자 이상은씨 아버지의 말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세상은 바꿀 수 있다.  더 많은 마음이 모일 수 있길 바란다.
‘유가족과 10.29km 서울도심걷기’ 행사는 오는 21일에 궁궐 따라 둘레길 4.6km를 걷고 마무리될 예정이다. 그 외에도 온오프라인 1주기 추모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진행된다. 자세한 내용은 10.29 이태원참사 공식홈페이지(www.1029act.n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  한 시민이 10.29 이태원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 전단지를 보고 있다. ⓒ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연재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기사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공식 홈페이지(www.1029act.net)에서 다른 1주기 추모 행사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