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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기 연재] 놀다 죽은 사람 추모할 생각 없다? 희생자다움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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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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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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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투쟁 그리고 공동체 회복의 과제> 첫날의 기록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걷다 159명이 사망한 10월 29일이 돌아오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죽음이 헛되지 않을까 고민하고 행동하며 지난 1년을 살아낸 사람들이 준비한 추모 행사들을 기록으로 남긴다.[기자말]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1년이다. 애도의 시간으로 보내기에도 짧은 1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 사회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아보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진실과 투쟁 그리고 공동체 회복의 과제>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학술대회의 첫날은 △재난과 권리_권리를 배제한 안전대책 비판, △재난과 공동체_한·중·일의 사례, △재난과 축제_이태원과 핼러윈, 총 3개의 세션이 진행됐다.
이번 학술대회 취지는 참사의 해결뿐만 아니라 참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번 참사의 가장 큰 특징이었던 참사 희생자들을 향한 비난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학술적으로 분석한 세션 3의 ‘이태원 참사, 애도의 위계를 넘어서기 위하여’를 자세히 기록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게는 왜 그렇게 모진 말들이 쏟아졌나
▲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1주기 학술대회 <진실과 투쟁 그리고 공동체 회복의 과제>를 듣고 있다. ⓒ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놀다 죽은 사람을 추모할 생각은 없다.’, ‘유흥을 즐기다 죽은 애들을 가지고 왜 이렇게 시끄럽게 떠드는지 모르겠다’. ‘거기( 이태원)에 간 게 문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주된 반응은 ‘놀다가 죽었으니 개인의 과실이고, 국가가 책임질 사안이 아니다’였다.
이해수(고려대학교 미디어학교육연구단) 연구교수는 “희생자 비난과 혐오에는 한국 사회가 오래전부터 뿌리 깊게 가지고 있던 유흥과 쾌락에 대한 금기가 작동하고 있다”고 짚었다.
“한국에서 근면은 성실함과 어른다움, 신뢰와 책임감 등과 같이 놓이는 반면에, 논다는 것은 개인의 게으름, 나태, 방탕함, 일탈, 낭비, 철없음의 범주로 이야기됩니다. 자기 계발이 아닌 유흥의 시간을 쓴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한 개인이 스스로 사다리를 걷어차는 일이고, 기회비용을 낭비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노는 것을 쉽게 비난하고 또 죄책감을 느끼곤 합니다.”
거기에 이태원의 장소적 특성이 결합했다. “이태원은 분명히 근면, 성실 또는 산업 발전과는 거리가 먼 곳입니다.” 그로 인해 ‘이태원에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갔던 피해자들에 비해 놀지도 못하고 일이나 공부를 해야 했던 내가 더 약자라는 생각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도 나왔던 ‘나라 구하다 죽었냐’ 등의 표현은 국가에 대한 헌신이 아니면 공적 애도를 받을 자격이 안 된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는 말이다. 이해수 교수는 “죽음에도 자격이 있고, 애도에도 위계가 있다는 무의식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타자화하고 애도 대신 비난을 쏟았다”고 말했다.
이해수 교수는 “결국 누가 더 약자냐, 피해자냐는 인정 투쟁으로 비화되는 과정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가 우리와 똑같은 일상을 살다가 사망한 사람이라는 점이 잊혀졌다”고 설명한다.
핼러윈이라는 낯선 축제
▲   2022년 10월 28일 저녁 핼러윈 데이'(10월 31일)를 앞두고 서울 용산구 이태원 관광특구 일대가 인파로 붐비고 있다. ⓒ 연합뉴스
이해수 교수는 ‘한국에서 축제는 중앙집권적으로 조직, 운영되고, 공공적이고, 질서 잡힌 것, 그리고 국가에서 만든 지침 아래 건전한 문화 활동을 위한 제도화된 대규모 행사의 성격을 띠고 있다’며 핼러윈 축제가 우리에게 낯선 이유를 설명했다.
“핼러윈은 그 어느 축제보다 카니발 정신이 발현되는 축제입니다. 특히 긴 (코로나) 팬데믹 끝에 열린 핼러윈은, 일상화된 재난이 억압했던 삶을 웃음으로 채색하고, 삶을 재건하는 기재이자, 일종의 순치된 카니발의 형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국가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조직되는 축제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무질서와 혼돈으로 여겨졌습니다.”
이해수 교수는 “‘핼러윈을 축제가 아닌 현상’으로 규정지었던 구청장의 발언, 핼러윈을 앞두고 대대적인 마약 단속을 예고했던 것, 그리고 코스튬을 그 신분을 가리기 위한 위장으로 둔갑시키고, 토끼 머리띠를 한 남성을 참사의 주범으로 지목해 수사가 집중됐던 것 등이 핼러윈에 내재한 카니발적 특성과 그것을 위험한 것으로 여기는 우리 사회 풍토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추모 받을 희생자다움이란 무엇인가
▲  서울광장 분향소 추모의 벽에 붙은 시민들의 1주기 추모 메시지들 ⓒ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지난 1년은 유가족들에게 애도의 시간, 위로의 시간이 아니라 이태원에 놀러 갔다 죽은 아이들의 가족이라는 싸늘한 시선을 감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서울광장에는 이름도, 얼굴도 없는 분향소가 설치됐고, 시민들은 누군지도 모를 이들을 향해서 국화꽃을 놓았다. 희생자의 정보 공개를 두고 집권 여당은 패륜이라며 모든 정보를 차단했고, 유가족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게 차단했다.
‘이태원에서 놀았다’는 이유가 치부와 패륜이 되는 사회에서 유가족들은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한 채 죄책감 속에서 침묵해야만 했다.
유가족들은 희생자를 애도하기 이전에 ‘내성적이라 밖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아닌데’, ‘하루 종일 스터디 카페에 앉아 공부만 하던 애인데’, ‘딱 한 번 놀고 공부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부모 속을 한 번도 썩인 적 없던 딸인데’ 등 희생자의 도덕적 올바름을 증명해야만 했다.
유가족들이 진상 규명을 요청하는 목소리에는 ‘나라 지키다 죽은 장병들 부모도 가만히 있는데 어찌 이태원에서 놀다 죽은 부모가 저리 당당하냐’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해수 교수는 “이는 유가족은 수동적인 피해자로서 상실의 슬픔에만 빠져 있어야 한다는 ‘유가족다움’의 프레임이 작동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저는 결코 유가족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놀다가 죽은 피해자에 대한 낙인이 강력하게 작동하면서, 유족들이 시민사회에 연대를 요청하는 손짓이 이상적인 피해자상과 비교해 그들이 얼마나 평범했고, 얼마나 도덕적이며, 얼마나 열심히 근면, 성실하게 살아왔는지를 입증하는 방식으로 요구되어야만 하는 것, 그래야만 애도의 자격이 주어지는 풍토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해수 교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서사는 ‘그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어떤 삶의 형태를 가지고 살았든 조건 없이 추모받을 수 있다’를 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태원 참사는 유흥을 터부시하는 유의적 엄숙주의와 굴절된 공정성을 숭배하는 한국적 신자유주의의 통치성 민낯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봅니다. 무엇이 애도할 만한 대상으로 여겨지는지, 누구의 죽음이 공적 애도의 대상이 되는지… 애도를 규정짓는 폭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참사입니다.”
애도에는 위계가 없다
그날 이태원에 간 너와 가지 않은 나, 열심히 사는 나와 놀다가 죽은 너를 구별 짓는 것, 서양 귀신 축제에 싸돌아다닌 여성은 문란하다고 낙인찍는 것, 청소년은 공부만 하는 아이라고 규정하는 것, 놀러 간 자녀를 제지하지 않은 유가족은 죄인인 것 등등..
이해수 교수는 ‘희생자가 애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 것 같은 애도의 위계는 그 서열에서 밀려나는 애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든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애도의 형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참사 직후에 국가 애도 기간이 결정되고, 크고 작은 문화예술 행사들이 전면 취소되었습다. 엔터테인먼트의 본질이 흥미이고, 공연은 축제이기 때문에 애도와 함께 갈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국가가 원하는 유일한 형태의 애도는 침묵뿐이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시 마포구는 ‘다중인파 사고 방지를 위해 핼러윈 데이 축제는 금지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15시간 만에 철거했다. 인파 관리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행정 편의적 발상이며 1주기를 침묵하며 보내자는, 사실상 망각을 종용하는 엄숙주의다.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억지 침묵과 망각이 아니다.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무너진 삶의 기반을 다시 다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함께 감정을 나누고 버티며 연대하는 것이다. ‘희생자다움’에 따라 규정된 애도는 결코 진정한 애도가 될 수 없다. 진정한 회복을 위해서는 위계화된 애도를 넘어서야 한다.
▲  이태원 참사 1주기 학술대회 <진실과 투쟁 그리고 공동체 회복의 과제>가 24~25일에 서울 광화문 변호사회관빌딩 10층 조영래홀에서 열리며, 유튜브로 생중계된다. ⓒ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학술대회 첫날에 참여한 이들은 공통체성의 회복에 입을 모았다. 
학술대회 둘째날인 25일에는 세션4(재난의 일상화와 시민참여), 세션5(재난의 지구화와 연결성)가 진행된다. 학술대회의 모든 세션은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유튜브(youtube.com/@1029itaewonTV)에서 생중계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연재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기사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공식 홈페이지(www.1029act.net)에서 학술대회 자료집과 다른 1주기 추모 행사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